정현(인하대학교, 미술비평)
“지난 수 세기에 걸쳐 인간 세계에서 한껏 범람한 빈곤, 불안, 불평등은 지구의 위태로움이 강렬하게 포착되는 시대에 어떤 위치에 놓이는가?”
- 조문영, 빈곤 과정, 글항아리, 2020, 357쪽
불평등에 관하여
도시는 태생적으로 잠들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전기 에너지, 증기 기관차, 사진, 엔진, 자동차 그리고 영상이라는 근대를 열어젖힌 인공적 발명품과도 무관하지 않다. 유럽의 근대화는 산업화를 거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구체제의 몰락은 신분제의 타파로 이어진다. 자유인이 된 개인, 시민, 국민은 기업과 국가를 위하여 자신의 노동력을 바친다. 충분한 대가가 치러지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인간이 도시를 창조했지만, 도시에 길들여진 건 바로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도시의 삶은 가장 안락한 상태를 향하여 발전한다. 에어컨의 기초가 된 공조장치를 개발한 윌리스 하빌랜드 캐리어(Willis Haviland Carrier, 1876~1950) 덕분에 뉴욕 맨하튼은 기후영향을 받지 않고 쾌적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건축물이 세워질 수 있었다. 인간의 욕망은 점차 인공의 힘에 기대어 자연을 통제하기에 이른다. 사실 그 덕분에 우리의 삶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쾌적해졌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한강 조망권의 아파트의 흡음창과 공조장치는 소음과 냄새를 지워버림으로써 이른바 뷰(view)라고 일컫는 풍경의 가치를 제공한다.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은 인간의 자연 수탈로 비롯되었으나, 인류는 멸균 상태의 위생화를 통하여 안전과 쾌적함을 삶의 가치로 미학화하기에 열중한다. 그 이면에는 유해한 동식물을 구분하고 생태계 파괴의 원인을 교란종과 정책 등의 탓으로 돌려 회피하고자 한다. 디지털기술에 의해 조성된 쾌적한 환경의 이면에는 컴퓨터의 열을 없애기 위해 엄청난 양의 전기 소비와 탄소배출이라는 야누스의 얼굴을 감추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이처럼 전 지구적인 도시에서의 삶은 계층에 따라 분명한 절취선이 그어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발터 벤야민은 기계기술에 의한 복제 가능성 덕분에 전통적인 신분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희망했다. 그의 바람처럼 대부분의 동시대인은 쉽게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평한 통신권과 문화적 향유만을 근거로 사회적 불평등이 해소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도시는 쉴 틈 없이 쓰레기를 배출하는데, 그것을 분류하는 사람들은 일상의 시작 이전과 이후에만 나타난다. 도시의 규모와 쓰레기의 양은 비례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쓰레기를 비체화한 사회적 풍토이다. 우리 대부분은 이러한 위생화에 많게나 적게 길들여진 상태이다. 쓰레기 매립지를 선정할 때마다 발생하는 잡음은 도시인의 이중적 태도를 적나라한 ‘내로남불’의 심리를 드러낸다. 도시는 점점 더 삶의 흔적을 지우고자 한다. 도시의 세련됨은 쇼윈도우에 배치된 상품과 날렵한 자동차와 대형빌딩에 세워진 미디어 파사드, 눈길을 사로잡는 홍보물과 화려한 건축물로 대표된다. 기술의 발전은 도시를 재현하는 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대도시의 홍보 영상은 날렵한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질주하는 자동차와 퍼포먼스, 현대미술, 대중음악, 클래식음악 공연 현장과 그 대구(對句)로 전통문화가 나란히 등장하고 높고 유려한 빌딩과 고궁, 자연광경, 등산객, 프로스포츠, 쾌적한 공원, 세계인이 한데 모인 장면 등을 연출한다. 어린이, 청소년, 다양한 직업군, 희귀한 천연기념물과 깨끗한 산하, 농부의 미소도 빼놓으면 안 된다. 도시의 표피에는 빈곤의 그림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당연히 분쟁의 장면, 재난현장도 삭제된다. 이 상징계의 스크린은 긍정의 이미지만 허락되기 때문이다. 지하철 광고판, 미디어 파사드가 쏟아내는 초현실적인 미디어아트의 장면,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전광판의 기계음성은 연신 도착 예정 시간을 알려준다. 디지털 알고리듬이 접합된 증강현실은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다수가 요구하는 필요한 것들만을 모아서 기술의 유용성을 뽐낸다. 네비게이션은 더 빠르고 더 안전한 길을 쉼 없이 갈무리한다. 마치 빨리 가는 것만이 최선의, 그리고 최고의 선택인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나처럼 빠른 길보다 익숙한 길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뭐랄까? 익숙한 풍경이 주는 위안이 있다. 때론 익숙함은 변화를 알아차리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준다. 빠른 길은 풍경을 주워 담아 사유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도시는 새로움에 도취되었고 그것이 사라지면 금세 지루한 게 되어 버린다.
조각적 행위에 의한 문화기술지
유지원에게 예술은 살아갈 힘, 계속 걸어갈 수 있는 동기,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의 작업의 근간은 버려진 잔해들, 사람의 관심에서 벗어난 이름도 없고 쓸모도 사라진,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방치된 것들로부터 출발한다. 버려진 것들에 대한 관심은 프랑스 유학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이방인의 삶이란 국적을 막론하고 부유하는 존재이다. 작가는 알프스 근방의 도시에서 미술학교를 다녔다. 너무도 당연하게 동양인을 찾아보기 어려운 곳에서 ‘운명적으로’ 2명의 동양인 친구를 만난다. 하릴없이 폐철로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마을 주변에 치우지 못한 쓰레기 더미를 발견한다. 목적 없이 쓰레기를 치우다보니 마을 주민들이 그들에게 관심을 보인다. 내친김에 쓰레기를 사용하여 트레일러를 제작하게 된다. 폐철로를 덮은 무명의 식물들을 치우고 트레일러에 쓰임새를 알 수 없는 것들을 싣고 앞으로 나아갔다. 목적지가 없는 움직임이었다. 덕분에 주변 이웃들이 관심을 보낸다. 이를 영상으로 기록한 “예술가의 여정(Le trajet de l’artiste, single channel video, 2015)”은 앞으로의 작업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상식적으로 마을에 쓰레기가 쌓여있다는 사실은 지역문제와 공공제도 사이의 공백이 있음을 알려주는 부분일 것이다. 작가는 귀국 후 광주광역시에 터를 잡은 후에도 당시와 유사한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광주 남구 월산동 재개발 지역이 오랜 시간 방치된 현장으로 작가는 그곳에서 “예술가의 여정”의 대구(對句) 작업인 Trace-Collector(2019)를 진행한다. 공사 중단으로 인한 재정적 피해도 크지만 한때 삶의 터전이었던 곳의 기억들이 해체되고 분해되어 산화하는 것 또한 비가시적인 피해일 것이다. 작가에게 버려진 공간은 단순히 이사를 간 빈 공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시 말해 차갑게 식어버린 사회적 신체의 죽음과 다름없을 것이다.
필연적으로 도시는 새로운 것이기에 오래된 것을 가리거나 과거를 지우기도 한다. 이제 사회적 불평등은 개인의 문제를 벗어나 제도의 책임이 되어 버렸다. 제도는 개인을 평가하고 분류한다. 개인을 분류하는 체계의 원리는 주로 소득(자산)과 장애를 중심으로 한다. 금융자본과 신체의 질병 여부에 의해 분류된 행정서류 속 개인은 평가항목에 대한 기술(description)과 등급 그리고 기준에 따른 상벌 체계로 존재한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감옥, 병원, 요양원, 기숙사 등의 설립과 도시의 관계를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 명명했다. 정부는 위의 시설을 설립하여 관리보호라는 명분으로 개인의 자유를 구속한다. 그들은 도시생활에 부적합한 부류라는 낙인과 함께 도시에서 추방되거나 감금된다. 새로운 유형의 건물은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여 생성될 수 있다. 물론 동일한 이유로 해체될 수도 있다. 도시의 빠른 현대화는 과거의 주거형태를 낡고 비생산적인 것으로 번역하여 새로운 것이 곧 좋고 옳은 것이라는 의견을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이른바 신시가지의 개발은 황금알을 낳는 불패신화를 쓴다. 개발주의는 지구의 유산을 탈탈 털어 금융자본의 대상으로 둔갑시킨다. 유지원은 버려진 공간에 남아있는 흔적들을 조형적 단서로 끌어와 전시장 공간에 기생하는 공간을 삽입시킨다. 남겨진 불완전한 형태를 일종의 건축적 장식 기능으로 은유한다(Trace-A, 골판지, 나무, 아크릴 채색, 2018/ Trace-E, 골판지, 나무, 아크릴 채색, 2018). 공간 안에 끼어들어간 또 다른 공간/장식물은 마치 유기체처럼 주어진 공간의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되고 왜곡되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공간의 구조화: 페허의 미학(Space structuring: The aesthetics of ruin, 설치, 혼합매체, 2021)”). 과연 이 과정을 재영토화라고 명명해도 될지 모르겠다. 비체라 부를 수 있는 잔존하는 흔적들은 적어도 전시 기간 동안 불필요한 부산물 또는 무의미한 장식물에서 벗어나 쓸모없음과 부족한 상태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골판지와 목재 등 매우 가볍고 다루기 수월한 재료는 단순히 제작의 편리함으로 선택된 것은 아닐 것이다. 빈곤한 삶의 기호가 된 폐지 줍는 노인에서 비롯된 조형적 질료는 작가의 윤리적인 태도를 나타냄과 동시에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연결시킨다. 예컨대 건축가 이타미 준(Itami Jun, 본명 유동룡, 1937~2011)은 원래의 지형을 그대로 살린 건축을 추구했다. 땅을 평평하게 하는 평탄화 작업 대신 지형을 살려 높낮이에 따라 계단이 세워졌다. 자연스럽게 땅의 표정과 형태를 따라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들뢰즈가 말한 배치의 미학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개발에 의해 축조된 현대도시는 축축하고 눅눅하다. 인공의 힘을 빌려야만 습기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동맥경화가 걸린 것처럼 도시의 몸과 마음은 힘겹게 하루를 버틴다. 파리와 리우데자네이루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개념미술가 도미니크 곤잘레즈-포에스테(Dominique Gonzalez-Foester, 1965)는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를 방문한다. 이 방문은 물론 의도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작업은 모더니티의 이상으로 세워진 도시를 따라가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대도시를 통해 모더니티의 이상은 실현되었다, 전 지구의 대부분 도시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조건이 덧붙여지는데, 그것은 바로 열대라는 기후조건이다. 세계화와 인공화의 현장을 따라가되 열대라는 조건에 맞춰 지역을 방문하는 것이다. 브라질리아는 완전한 인공도시이다. 당시 대통령은 브라질의 수도를 새로 개발했고 그 모델은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의 빛나는 도시(La Ville Radieuse)를 참조하였다고 한다. 완벽한 대칭 구조의 인공미를 강조한 이 도시는 열대에 속하는 브라질의 환경과는 매우 동떨어진 건축 프로젝트인 셈이다. 도미니크는 관광객의 입장으로 캠코더를 임대한 후 브라질리아의 건축양식과 자연환경 사이의 부조화를 촬영하면서 이러한 상황을 두고 이런저런 코멘트를 내뱉는다.
어셈블리지, 공간의 재배치
빠른 근대화를 이룩한 유럽의 1960년대는 과도한 산업화로 인한 인간 소외가 나타났다. 이는 실존주의 철학과 국제상황주의와 같은 문화적 운동으로 불붙게 된다. 도구로서의 인간, 노동의 장소로서의 도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학생, 지식인, 예술가, 활동가 등은 도시의 잠재력을 찾기 위하여 어떻게든 도시에 대한 사유와 실천의 방법을 찾아 나선다. 권력, 정치 그리고 산업에 의하여 구성된 도시가 과연 어떻게 인간적인 삶의 가치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들의 바람은 집단적인 만남, 양적인 것을 바탕으로 한 권력을 생산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합리성을 뒤로 하고 예술적 흐름을 도시 안에 배태하고자 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를 구성하는 배치의 방식을 다시금 생각해야 한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이렇듯 집단적인 관점으로 구조화된 삶의 형태를 소수적이면서 미시적인 세계를 위한 배치(agencement(fr)/assemblage(en))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배치의 미학이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특정 직업이나 활동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추구하는 대신, 그들의 행동, 발화 방식, 표현의 강도에 따라 감지할 수 있는 운율과 속도 그리고 분위기(tone) 등의 연결을 통하여 세계를 관측해보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동(affect)이 발생하는 것이다.
유지원의 작업은 존재를 확인하기 위하여 세상의 주변부를 배회하면서 버려진 것들, 외면 당한 사람들, 낡은 길과 이름 모를 풀들을 만났다. 그 사이에서 부지런히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삶의 잔해들을 모았다. 사실 목적을 가진 행동은 아니었지만, 때로는 타인이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실은 그런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그렇게 맺은 관계 덕분에 버려진 것들, 이름 붙이지 못한 존재들, 사라지거나 사라질 흔적을 추적하는 중이다. 자칫 지나치게 인간애를 호소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그의 조각적 태도는 자신의 자리를 갖지 못한, 또는 빼앗긴 빈곤의 자리, 리어카의 보이지 않는 스키드마크를 연약한 재료와 화려한 색깔과 건축적 구조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1) 르 코르뷔지에가 1933년에 출간한 저서로 도심 중심에 고층건물단지를 조성하고 그 주변에 녹지를 위치시켜 도시와 전원을 모두 충족시키는 제안이었으나 마치 한국의 아파트단지와 같이 내부에서 자연을 향유할 수밖에 없는 일률적이고 반생태학적인 도시계획이라 평가받은 모더니즘의 이상을 대표하는 프로젝트였다.
2022 < 광주시립미술관 국제레지던시 > 비평글
When Sculpture Reveals the Precariousness of the World
“What are the places of poverty, anxiety and inequality, which have plagued the human world over the past centuries, in an era when Earth is clearly under serious threat?”
- Mun Young Cho, Poverty as Process, Geulhangari, 2020, p.357
About Inequality
It looks as though cities are, by nature, incapable of falling asleep. To a certain degree, this has to do with the artificial inventions that opened up the modern era of electric power, steam locomotives, photography, engines, cars, and images. The major driving force behind this rapid modernization in Europe was industrialization. The collapse of the old order has led to the breakdown of the social hierarchy system. Individuals with new-found freedom began to dedicate their labor to their country and its businesses, the consequences of which took a while to become apparent. Though we humans were the very architects of these cities, we ended up being tamed by our own creations. Life in the city develops in a way that it can bring the most comfort to its inhabitants. Thanks to the modern air-conditioning system developed by Willis Haviland Carrier (1876~1950), for example, it was possible to construct buildings in Manhattan, New York, where people could work comfortably without being influenced by the weather. Driven by desire, humans have gone a step further to gradually take control of nature on the strength of artificiality. In fact, it is undeniable that this has made our lives much more comfortable than before. For one thing, the sound-absorbing windows and air conditioning systems in apartments overlooking the Han River add to the value of their so-called ‘view’ by removing unwelcome noise and smell. The current climate crisis and environmental pollution have resulted from man’s exploitation of nature, but humanity is intent on aesthetizing safety and comfort as the core values of life through a level of sanitation that borders on sterility. At the same time, they try to shirk responsibility by attributing ecological destruction to harmful animals and plants, invasive species, and government policies. The truth is that behind the pleasant environment created by digital technology lies the Janus face of large electricity consumption and carbon emissions involved in eliminating the heat produced by computers. Similarly, city life across the globe is split along clear class-based lines. Walter Benjamin hoped that the availability of mechanical reproduction would help overcome traditional distinctions of social hierarchy. His hopes have now become reality, since most people can easily listen to music, watch movies and express their opinions. However, not many people consider equal access to communications technology and cultural contents as sufficient grounds to believe that social inequality has been eliminated. Cities constantly produce trash, but garbage pickers escape our notice because they work only before the start and after the end of people’s daily life. The amount of trash increases in proportion to the size of the city, but more dangerous is the social climate that considers garbage as an ‘abject’. Most of us have more or less become acclimated to this state of cleanliness. The controversy that arises every time a city announces the site of a new landfill reveals the city-dwellers’ ‘NIMBY’ psychology, an attitude that is based on double-standards. More than ever, cities are trying to erase traces of life. The sophisticated city life is represented by the assorted products displayed in show windows, sleek cars, the media façade mounted on the exterior of skyscrapers, the eye-catching promotion materials and fancy buildings. Technological advances also greatly influence the way cities are represented. Promotional videos for metropolises feature cars racing along sleek roads, performances, modern art, and scenes from pop or classical music concerts, alongside images of traditional cultures. They also show tall, elegant buildings and old palaces, natural landscape, hikers, professional sports, pleasant parks, and groups of people from around the world. Children, teenagers, people with different occupations, rare natural monuments, pristine nature, and farmers’ smiles almost never fail to be included in these videos, either. Not even a hint of poverty can be observed on the surface of the cities. Needless to say, scenes of conflicts and disasters are completely obliterated. The reason is simple: these symbolic screens only allow positive images. Surreal media art keeps pouring from subway billboards and media façades, while the mechanical voice from the electronic display boards at bus stops constantly remind us of our buses’ expected arrival times. Augmented reality, which relies on digital algorithms to present only what the majority want based on rationality, is the utmost manifestation of technological achievement. Navigation systems constantly update faster, safer routes, as if getting to the destination faster were the best and most important choice. In my case, though, I prefer familiar routes to fast routes, and I am probably in good company. How can I put it; there is a sense of comfort coming from a familiar setting. Sometimes, familiarity helps us to notice changes, too. Fast routes prevent us from appreciating the scenery around us. Cities are obsessed with novelties, without which everything suddenly feels boring.
Ethnography through Sculpture
For Yu Jiwon, art is the source of the strength to live, the motivation to keep going, and a window to new discoveries. His works were inspired by discarded debris, things without name or use that have ceased to draw people’s attention and thus were left completely unattended. He developed an interest in abandoned things while he was studying in France. In fact, regardless of nationality, being on a foreign land implies living as a drifter. The artist went to art school in a city near the Alps, where he had a ‘fateful’ encounter with two Asian friends. One day, while hanging aimlessly around an abandoned railroad, they came across a pile of neglected garbage in a corner of the village. They began to clean it up without any purpose in mind, an act that attracted the neighbors’ attention. They went even further, making a trailer with the trash. They removed the nameless plants covering the old railroad tracks and loaded the trailer with things of unknown use. Then, they pushed the trailer forward, without any particular destination in mind. The neighbors seemed amused by their behavior. Le trajet de l’artiste (single channel video, 2015), a video work that recorded these scenes, would have a significant influence on his future works. Basically, the presence of a pile of garbage in a village suggests failure of the public system to address local problems. He witnessed a similar sight in Gwangju Metropolitan City, where he settled after his return to Korea. It was a long-neglected redevelopment area in Wolsan-dong, a neighborhood in Nam-gu, Gwangju, where he produced Le trajet de l’artiste’s parallel work, Trace-Collector (2019). Its residents must have sustained huge invisible damage from the disintegration and dissolution of memory about a place they once called home, let alone the economic losses caused by suspended construction. For the artist, an abandoned space is not simply an empty place left by people who have moved away; it represents the cold death of a social body.
Cities are, by nature, something new, and thus tend to conceal what’s old or erase the past. Now, social inequality has gone from being an individual issue to becoming the responsibility of the public system. The system evaluates and classifies individuals. The classification of individuals is mainly based on income and disability. In other words, individuals are classified according to their financial status and health condition for administrative purposes and exist as objects of reward or punishment depending on the description, grade, and standard of their assessment. Michel Foucault elaborated the concept of heterotopia to describe the establishment of such places as prisons, hospitals, nursing homes, and dormitories, and their relationship with the city. The government sets up these facilities and restricts individual freedom under the specious guise of management and protection. These individuals are stigmatized as urban misfits and are thus confined or expelled from the city. New kinds of buildings can emerge in response to the needs of the times. Of course, they can also be dismantled for the same reason. The rapid modernization of cities renders past residential spaces old and unproductive, reinforcing the idea that the new is always good and right. As this opinion gains ground, the so-called New Town Development Projects become an inexhaustible source of wealth. Development depletes Earth’s resources and transforms them into a target of financial capital. Yu Jiwon inserts a parasitic space inside the exhibition room, taking its artistic clues from traces of objects found in abandoned spaces. The incomplete structure serves as a metaphor for architectural ornament (Trace-A, corrugated cardboard, wood, acrylic color, 2018/ Trace-E, corrugated cardboard, wood, acrylic color, 2018). A second space/ornament embedded in another space changes and evolves like an organic body in response to the conditions of the surrounding space, often creating a surreal atmosphere (Space structuring: The aesthetics of ruin, installation, mixed media, 2021). This process could perhaps be described as ‘reterritorialization’. At least during the exhibition period, the remaining traces that can be called ‘abjects’ do not exist merely as superfluous residues or insignificant ornaments, but serve to convey a state of uselessness and inadequacy. I believe he didn’t choose light and easy-to-handle materials such as corrugated cardboard and wood simply because they are convenient to work with. These materials reflect the lives of elders who pick up waste paper, a symbol of poverty, and evince the artist’s ethical attitude as well as the trajectory of his life. For example, architect Itami Jun (1937~2011) sought to create architecture that preserved the topography of the land. Instead of flattening the ground, he built stairs in order to maintain its original geographical features. He was guided by the natural expression and shape of the ground. This is exactly what Gilles Deleuze called ‘aesthetics of assemblage’. As is common knowledge, modern cities, which are the product of development projects, are damp and humid because humidity can only be controlled by artificial means. The body and mind of a city can just barely get through the day as if it were suffering from a chronic disease. Dominique Gonzalez-Foester (1965)[1], a conceptual artist based in Paris and Rio de Janeiro, visited Brazil’s capital city of Brasilia. This visit, of course, was intended, since his works consist in following cities designed to embody the ideal of modernity. Interestingly, the ideal of modernity has indeed been realized through large cities, and this may be true of most cities across the world. Here in Brasilia, though, there was an added characteristic, its tropical climate. In other words, he visits areas that have been influenced by globalization and artificialization, but that also have a tropical climate. Brasilia is a completely artificial city. The then Brazilian president who developed the new capital is said to have gotten some of his ideas for the city from ‘La Ville Radieuse’ a book written by the father of modern architecture, Le Corbusier (1887~1965). This urban design project, which emphasizes artificial beauty achieved by perfect symmetrical structures, is quite incompatible with Brazil’s tropical environment. Dominique rents a camcorder and begins filming Brasilia like a tourist, all the while making comments about the mismatch between its architectural style and natural environment.
Assemblage, Rearrangement of Space
The 1960s of Europe, which had gone through rapid modernization, was a time marked by human alienation caused by excessive industrialization. This gave rise to such cultural movements as the Situationist International and Existentialism. In an attempt to challenge the widespread perception of them as tools and the city as a place of labor, students, intellectuals, artists and activists set out on a path to discover the potential of the city and ways to fulfill it. How can a city built on power, politics and industry restore the value of human life? They were not seeking to create a rational power structure that responded to the collective needs of the majority. Rather, they wanted to build a city where artistic spirits prevailed over rationality. To that end, it was necessary to first come up with new ways of arranging society. Philosopher Gilles Deleuze believed that the modes of life structured from the collective perspective should give way to an assemblage tailored for the microscopic world of the minority. Here, the aesthetics of assemblage has to do with the way we perceive the world. In other words, instead of pursuing the social significance of a particular profession or activity, it proposes observing the world through the combination of rhythms, speeds, and tones that change according to their behavior, speaking styles and intensity of expression. This is where ‘affect’ comes into play.
Yu Jiwon’s works bring together discarded things, neglected people, old roads and nameless grasses that he came across as he hovered around the periphery of the world in search of identity. He tirelessly collected traces of life that had ceased to attract people’s attention. In fact, he did so without any specific purpose in mind. But sometimes, it is through other people that our actions acquire meaning. Actually, this may be true in most of the cases. Encouraged by this experience, he is still searching for discarded things, nameless beings, and traces of life that have disappeared or will soon disappear. His work might come off as a desperate appeal to human compassion, but what it really does is camouflage poverty, whose place has been denied or stolen -the invisible skid-marks of the trailer-, with fragile materials, vibrant colors, and architectural structures.
[1] It is a book published by Le Corbusier in 1933 containing his proposal to build high-rise housing blocks surrounded by abundant green spaces in order to create a city with both urban and rural charms. The project embodied the ideals of modernism, but was criticized for being a uniform and anti-ecological urban plan where people can only enjoy nature from inside, just like the apartment complexes in Korea.
Jung Hyun (Art Critic, Inha University)